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는 1678년에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던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산파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이는 그의 생명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나 봅니다.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가 급히 세례를 받는 것은 대부분 그 아이의 건강상의 문제나 당시 그 동네에 있었던 지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세례는 성직자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영혼 구원을 위해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행해집니다. 성직자가 세례를 줄 시간이나 여력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세례를 받아도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비발디의 어머니는 비발디를 사제로 신에게 바쳤습니다. 비발디의 공식적인 교회 세례는 두달 후에 행해졌습니다.
비발디의 부모는 브라고라의 샌 지오반이의 기록에 의하면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발디와 카밀라 칼리치오였습니다. 비발디는 5명의 형제를 두었습니다. 마가리타 가브리에타, 체칠리아 마리아, 보나벤투라 토마소, 자네타 안나 그리고 프란체스코 가에타노입니다. 전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전에 이발사였던 비발디의 아버지 지오반니 바티스타는 아들 안토니오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가르치고 안토니오 비발디와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베네치아를 여행했습니다. 안토니오는 아마도 이른 나이에 배웠을 것입니다.
일종의 음악협회인 소베뇨의 회장이 지오반니 레그렌치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초기 바로크 작곡가이자 성 마르코 성당의 지휘자였습니다. 레그렌치가 러린 안토니오에게 첫번째 작곡 선생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룩셈부르크 학자인 발터 콜네더는 바발디의 초기 작품들에서 레겐치 스타일의 영향을 발견했습니다. 비발디의 아버지는 그 자신도 작곡가였고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비발디의 건강은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그의 증상들을 보면 천식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비발디가 바이올린 연주, 작곡, 음악적 활동들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이 때문에 비발디는 관악기 연주는 힘들었습니다. 1693년에 15살 되던 해 그는 사제가 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25살인 1703년에 서임을 받았고 il Preste Rosso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는 붉은 사제란 뜻입니다. 그의 머리 색이 붉은 색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은데 이는 그 가족력입니다.
서임 직후 1704년에 그는 그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미사 집전을 감면받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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